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에 대한 오해와 진실
아래 기사가 인용한, 이번 헌재 신청 각하로 논란이 된 법안은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며, 약칭 의료분쟁조정법이라고 한다.
이 법안은 처음 법안 발의가 된 후 2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공전하다가 지난 18대 국회에서 비로소 입법이 완료되어 지금 발효 중인 법안이다.
사실, 이 법이 입법된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지루하고 오랜 논쟁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 법안에는 주요 쟁점 사항이 있는데, 장시간 법안의 쟁점을 놓고, 의료계와 시민 단체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있었고, 그 결과 대부분의 쟁점 사항은 의료계의 바램대로 완성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가장 큰 쟁점은 의료사고의 과실 여부를 누가 입증할 것이냐이었는데 의료계는 피해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환자가 의사의 과실 여부를 입증해야 한다는 주장이었고, 시민단체 측은 비전문가인 환자가 과실 여부를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의사 혹은 의료기관이 과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라고 맞섰던 것이다.
이를 과실 입증 전환이라고 부른다.
의료분쟁조정법의 첫 장(chapter)인 과실 입증에서부터 서로의 의견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이후에 논의되어야 할 많은 쟁점 사항들도 진행되지 못했는데,
이번 법안에서는 과실 입증 책임 소재를 아예 삭제하고, 의료분쟁조정원에서 직접 과실 여부를 조사하여 판단하는 것으로 비켜갔는데, 묘수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차선책으로써 서로가 한 발 뒤로 양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이 법에 대한 다른 사항은 다음 기회에 다시 논의키로 하고,
이번 산부인과 의사회 등이 헌법 소원으로 제기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 재원 마련>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먼저 용어에 대해서 지적하자면,
아래 참고한 기사 역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와 무과실 의료사고를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지난 쟁점 기간 동안 한 때 무과실 의료사고라는 용어를 쓰긴 했지만, 법적 용어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이며, 이 둘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알고 정확한 용어를 써야 한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와 무과실 의료사고는 결과적으로는 둘 다 의료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무과실 의료사고는 사고 조사를 해 보니, 의사의 과실 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즉 과실 입증을 할 수 없는 경우이다.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는 의사의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사고가 발생했고, 그 사고는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사고를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분만 후 신생아에게 뇌성마비가 생기는 경우이다.
의사 누구도 악의적으로 분만행위를 하여 아가에게 위해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 다만, 의학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분만의 경우나 정상적인 분만을 하였다 하여도 예기치 못하게 이런 사고가 생길 수 있다.
의료 행위는 기본적으로 인체에 해를 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침습적 의료 행위가 많다.
환자의 배를 가르는 행위는 보통 사람이 하면 상해죄에 해당하지만, 의사가 수술을 목적으로 할 경우에는 그 행위의 의도가 선한 의도임을 알기 때문에 처벌하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의사가 여자 환자의 음부나 가슴을 만지는 행위도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하는 선의를 가지고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이것을 성추행으로 처벌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논란이 되는 아청법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심지어 국내와 외국의 어느나라에서도, 의사가 선한 의도로 환자를 치료, 수술하는 도중에 환자가 피해를 보거나 사망에 이르렀을 때 그것으로 의사를 형사범으로 인신 구속하거나 실형을 받도록 하는 경우는 없다고 단언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법도 그 같은 의사의 행위를 인정하는데 아청법은 예외없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도 의사를 처벌하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아무튼, 의사의 행위의 결과로, 환자에게 사고가 발생했으나 정황상 불가항력이라고 판단할 경우 의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나, 여전히 피해자는 남는다는 문제가 있다.
이 경우 이 같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한 문화가 있다면 다르지만, 환자가 사망하면 일단 욕설과 멱살잡이부터 시작하고 보는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아무리 불가항력적 상황임을 설명하여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결국 조정은 실패하고, 소송으로 가게 되고, 수 년간 무의미하고 지리한 공방에 쌓이게 된다.
또 그런 걸 떠나서도 아무리 불가항력적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의사 혹은 의료기관이 피해자에게 도의적으로 소정의 보상을 하는 것이 한국인의 정서에 맞다.
그래서 불가항력적 의료 사고에 대한 보상을 해 주자는 것이 오랜 기간 의료계의 입장이었다.
다만, 이 법안 입법 과정 중에 두 가지가 문제가 되었는데, 하나는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것과 보상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처음, 이 보상은 국고에서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개인 간의 민법적 계약 관계에서 생기는 보상을 국가가 할 수 없다는 정부 입장이 강했고, 모든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로 범위를 확대할 경우, 이 같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기초 자료 (연간 발생 통계 등)가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보상키로 할 경우에 재원 추계가 불가능하므로 사업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의견이 강했다.
그래서 이를 절충하여, 처음에는 정부와 의료기관이 절반식 부담키로 했다가 의료계의 반대가 거세자, 정부가 국고로 재원의 70%를 부담하고, 나머지 30%는 의료기관이 규모에 따라 나누어 내기로 결정한 것이며,
재원 추계없이 모든 불가항력적 사고에 적용키는 어려우므로, 향후 의료분쟁조정원에 접수되는 사고의 유형과 과실 입증을 토대로 불가항력적 사고로 판단하는 사고 건수에 대한 기초 자료가 모이게 되면 점차 확대키로 하고, 우선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분만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적용키로 한 것이다.
즉, 분만 도중 발생할 수 있는 산모의 사망이나 사고, 신생아의 사망이나 뇌성마비와 같은 불가항력적 사고에 대해서 우선 보상 사업을 하기로 한 것이며, 이는 여러가지로 어려운 산부인과를 배려한 것이지, 어려운 산부인과를 더 어렵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산부인과 의사회 등이 이를 문제 삼고 헌법재판소에 위헌 판결을 요청한 것은, 이 재원 마련에 산부인과 의료기관이 30%를 부담하는 것은 재산권,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며,
헌재는 이 심판 청구를 검토하고 이에 대한 의료분쟁조정법의 법령이 재산권 침해 등 국민 기본권 침해에 대한 위헌적 요소가 없다며 심판 접수 자체를 거부 (각하) 한 것이다.
이처럼 위헌 소송까지 제기된 것에는 이 법에 대한 심각한 오해와 불신이 한 몫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처음 의료분쟁조정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된 때에 이를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단체는 다름아닌 변호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또, 검찰과 재판부 역시 의외로 받아들였는데, 변협은 이 법으로 의료사고 소송 건수가 현저히 줄어 들어 이 시장이 위축될 것을 우려한 듯 하고, 검찰이나 재판부는 기존의 사법기관 외에 별도의 하나의 사법기관이 만들어지는 것이 놀랍다는 반응이었고, 무엇보다도 어떻게 이 법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 궁금해 했다.
이들 법조계의 놀라움과 달리, 오랜 기간 의료분쟁조정법에 관심을 가졌던 의료계 인사들은 이 법의 입법을 환영하였다.
그런데, 하위 법령을 논의하기 시작하면서, 전의총 등이 이 법을 악법으로 규정하고 법의 문제점 들을 지적하며 논란을 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의료분쟁조정법은 상당히 복잡하고 내용이 많은 법이며, 각각의 법률 조항이 설계된 배경과 의미를 모를 경우, 즉, 이 법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하면 이 법을 쉽게 해석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양각색의 제각각 다른 법 해설이 난무하면서 다수 의사들이 혼란에 빠졌고, 전의총 등 일부의 선전선동에 휩쌓이게 되었다.
이 선전선동의 제일 앞 자리에 있던 자가 바로 지금의 노환규 회장이다.
그 결과, 국고 수백억을 투입해 만든 의료분쟁조정원은 개점 휴업 상태나 마찬가지가 되었고,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소송으로 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의료분쟁조정원은 상당히 많은 의사들이 상근 혹은 비상근의 형태로 조사와 심사, 조정 등에 직접 개입하여야 하는데, 의료분쟁조정원에 일체 협조하지 말라는 노 회장의 지시로 의사들은 모두 빠지고 그 자리를 엉뚱한 다른 이들이 차지하고 있다.
자, 그럼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는가?
의료분쟁조정원은 처음 만들어진 것이다.
의료사고가 접수되면, 과연 어떻게 조사를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 즉 과실 입증을 위한 심문에 대한 매뉴얼, 현지 조사에 대한 매뉴얼 등이 전혀 없는 가운데, 누군가 그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의료계가 통째로 빠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조사한 근거로 어떻게 보고서를 쓸 것인지, 조정 중재 절차에서 조정가액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 그 어떤 가이드라인도 없는 상황에서 한 두 사람의 객기로 이에 참여치 않게 됨으로써 결국 애써 잘 만든 의료분쟁조정원은 의료계의 손에서 멀어지게 된 것이다.
이건 정말 잘못된 일이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 것이다.
의료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가이드 라인을 만들고, 매뉴얼을 만들어 두었어야 했으며, 조정 절차에도 참여하여 의료계의 입장을 강하게 전달했어야 했다.
노회장 등이 이 법을 악법으로 규정하고 반대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불가항력적의료사고에 대한 보상 재원 마련인데, 의료계는 단 한 푼도 내서는 안된다며 고집을 피운 것이다.
그럼, 의료계 즉, 각 산부인과는 도대체 얼마나 돈을 냈을까?
정확한 금액을 알수는 없지만 지난 수 년간 낸 금액은 의원의 경우 겨우 수 만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쩌면 나에게 닥칠지 모르는 의료사고, 갑작스런 산모의 죽음, 아가의 뇌성마비를 보게 되었을 때, 아무리 나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해도, 이를 위로하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라고 분만의사들의 십시일반 돈을 거두어 주자는 것이 그리 잘못된 일이었던가?
단견과 아집으로 의료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는 것을, 그 논란에 앞장 섰던 자신들은 과연 알고나 있을지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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