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의료 전문지 라포리시안이 문제 제기한 “미래창조소설부?…원격 한방맥진기 등 개발에 수백억 투입”이란 제하의 기사의 요지는 “정부가 창조경제 활성화에 대한 압박으로 의료와 IT의 융합에만 정신이 팔려 불필요하거나 실효성이 없는 재품 개발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사는 “정부 꼬집기에만 급급해 정작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면, 이 과제가 발표되었다는 <오늘>만 보고 무엇을 판단해서는 안되며, <오늘>의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어디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알아야 대응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부로 통칭되는 미래창조과학부는 과거 정권의 교육과학기술부, 지식경제부, 방송통신위원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통합한 거대 부처이다.

부처가 통합된다고 해서, 각 부처가 했던 업무가 모두 통합되거나 업무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왜냐면, 행정부의 각 국-과는 그 부서를 만들어지고 그 부서가 관장하여야 할 법이 있기 마련이고, 법이 없어지지 않는 한 그 부서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예로, 과거 교육과학기술부에는 소위 “기술개발촉진법”이라 불리는 “기초연구진흥 및 기술개발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여러 분야의 원천 기술을 개발 지원하는 부서가 있는데, 이 부서는 지금도 미래부에 있다.

이 부서가 지원하는 원천기술 중에는 최근 부상되고 있는 소위 BT (Bio-technology) 분야도 있어, 교육과학기술부 시절부터 바이오-의료기술개발 사업을 국책사업으로 정하고 해마다 수천억의 국고를 지원해 왔었던 것이다.

이번 미래부에서 확정하였다고 하는 건, ‘바이오헬스 신시장 발굴을 위한 미래부 R&D 추진방안’(이하, 추진방안)이라는 것이다.

이 추진 방안은 지난 작년 7월 관계부처 공동으로 수립한 「국민 건강을 위한 범부처 R&D 중장기 추진계획」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미래부는 기존의 바이오-의료기술개발 사업 외에 이 같은 추진 방안을 내놓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 동안 정부가 발표한 바이오 분야 R&D 정책을 유심히 살펴보면 어떤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내용은 많지만, 특정한 건강과 관련된 이슈를 대상으로 그 이슈의 해결을 위하여 어떻게 R&D를 추진하겠다고 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번에 발표한 정책은 정부가 추진하는 R&D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으로, 기술 공급자 중심의 연구개발에서 벗어나 국민들의 수요가 R&D로 연결되고 R&D성과가 이후 구체적으로 어떠한 제품 또는 서비스로 연계 될 수 있는 지에 대한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며, 앞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R&D는 이와 같은 형태로 바뀌게 될 것이다.”

즉, 정부 지원 BT 분야의 R&D가 원천기술, 기초기술 쪽에 치중되다 보니, 년간 수천억이 지원되어도 실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가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30일 발표된 이 추진방안이 나오기까지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라포의 기사나 의료계가 이 추진방안에 대해 비난을 가하는 이유는 미래부가 적극 지원키로 하고 800억원이라는 큰 예산을 들여 개발하겠다고 선정한 <과제>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한의학기반 생활습관 관리 App 및 진단기기 기술 개발>에 3년간 75억원을 투입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따라서 어떻게 이런 과제들이 선정되고, 추진 방안으로 결정되었는지 아는 것이 관건이라 할 수 있다.

미래부의 설명에 따르면,
“국민 수요, 병원‧기업‧연구소 등의 전문가 의견 등을 토대로 생애 단계별(유아 - 청소년 - 청장년 - 노년) 총 20여개 건강문제(후보)를 발굴하였으며, 현재 기술수준, 단기 성과창출 가능성, 민간시장 여건 등의 기준 하에, R&D를 통하여 우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생애단계별 8大 건강문제」를 선정하였다.”고 한다.

또, 전문가 자문회의(’14.1-2월, 10여회), 관련 산업계 인사 면담(’14.1-2월, 8회) 등을 거친 후,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이영식 한양대 교수)를 거쳐 확정 후 발표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미래부의 이 설명을 일단 접어 두고,

정부 부처가 과제를 선정하고 업무를 추진하는 일상적 방식을 보면,

외부의 자문이나 내부의 기획을 통해 <무엇>을 하겠다는 결론이 서면, 이에 관해, 국책 연구소, 학계를 통해 기초 자료를 수집하고 타당성 검토를 하는 용역을 발주한 후, 그 결과를 토대로 관련 단체나 업계, 학계의 자문과 의견을 받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또, 최종적으로 이를 결정할 때는 소위 민관합동 위원회의 심의를 거친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정부 정책 방향이 기존 업계나 관련 단체의 저항에 부딪힐 경우 정책 추진 자체가 난항을 빚게 되고, 의견 조회나 자문 회의 (혹은 민관위원회)의 형태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암묵적 동의를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부의 설명대로, 이 추진 방안은 이 같은 과정을 거쳤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또, 이 추진 방안은 의료-건강에 관한 것이므로, 의료계의 의견 없이 추진되었을 리 없다.

당연히 미래부는 한의협은 물론 의협, 병협 등 의료법에 규정된 단체에 의견 조회를 요청했을 것이고, 전문가 자문회의에 불렀을 것이다.

또한, 이 방안을 심의한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추진위원회에도 의료계 인사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의학기반 생활습관 관리 App 및 진단기기 기술 개발>에 75억원을 투입 하기로 결정된 것을 납득할 수가 없다.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은, 미래부가 의협을 빼고 이 일을 추진했거나 미래부의 의견 조회에 의협이 등한시하고, 전문가 자문회의에도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또 한가지 의문은 이 추진 방안 발표는 지난 20일에 있었는데, 이에 대해 의협이 일언반구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일 의협을 빼고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면, 의협은 더 큰 목소리로 미래부를 성토해야 맞다.

때문에, 여러 정황상 미래부가 과제 선정과 이에 대한 전문가 자문에 의협이 응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이는 것이다.

결론은 의협 혹은 의료계가 일이 여기까지 추진되는 동안 몰랐거나, 알았다 해도 어떤 이유로 묵과하고 넘어갔다는 것이다.

몰랐다 해도 큰 문제이고, 알고 모른 척 했다면 이건 더 큰 문제이다.

의협이 해야 할 가장 기초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며, 의협의 기능이 마비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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