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의료기관은 다 민영화되어 있다"는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에 대해서





지금 “의료영리화”라는 걸 걸고 파업 투쟁을 하는데, 이게 뭔지 아는 이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이 뿐 아니라, 의료민영화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의료는 공공재이다라고 주장하는 시민단체 출신 변호사가 있는가 하면,
진주의료원 폐쇄를 두고, ‘공공의료를 말살하려는 것이다’라는 뉘앙스의 주장을 하는 시민단체도 있었다.

뭐, 이런 주장은 시민단체뿐이 아니다. 의협회장도 같은 주장을 한 바 있다.

용어는 사상을 지배한다.
정확하게 뜻을 공유할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의사 소통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이를 테면, 공공의료 강화냐 의료민영화냐를 놓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거기에다 <의료영리화>라는 단어로 쑥 들어오면, 이건 수돗물이냐 생수냐를 논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맑은 물!>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왜냐면 물은 원래 맑은 것처럼, 공공의료건 민영의료건 영리는 중요한 목적이나 수단이기 때문이다.

의료영리화라는 단어는 없다. 그냥 사적으로, 임의로 만든 신조어일 뿐이다.

그런데, 의료영리화 반대라는 프로파간다가 성립되면, 병의원이 수익을 내는 행위는 죄악이 되어 버린다.

공공의료기관이건 민간의료기관이건, 수익이 없으며 재투자도 없고, 서비스를 개선할 수도 없다. 뭐, 공공의료야 세금을 더 쓰면 되겠지만...

의대에서 의학용어학을 그냥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소통할 수 없고, 음모론과 의혹만 자꾸 생긴다.

지금부터 설명하는 공공의료, 민간의료의 정의와 의료민영화는 보건경제학의 기초 상식이고, 이건 타협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엄마는 원래 엄마고 아빠는 원래 아빠인 것처럼...

자, <우리나라 의료기관은 다 민영화되어 있다>는 말이 왜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인지 생각해 보자.



참고로 이 말은, 의료영리화 반대라며 이번 투쟁을 이끌고 의협 회장이 했던 말이기도 하다.

우선 <공공의료>와 <민간의료>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둘을 나누는 가장 기본적인 차이는 바로 <시장>이다.

의료시장이 공공에 의해 만들어진 시장이냐, 아니면 민간에 의해 만들어진 시장이냐가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은 상품과 재화가 거래되는 장소이다.

내가 재화(물건이나 서비스)를 구입할 때 내 돈을 직접 내고, 내가 임의로 상점을 선택할 수 있으며, 물건 값을 깎거나 협상할 수 있는 곳, 혹은 가격이 시장원칙에 의해 정해지는 곳, 그 시장을 시장경제 원칙에 따른 시장, 다른 말로, 민간 시장(Private market or private sector)이라고 부른다.

때로는 내가 직접 내기 보다는 내가 계약한 보험회사가 대신 지불해 줄 수도 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내 의지에 따라 그 보험회사를 선택할 수 있다면, 이 역시 Private market에 해당한다.

그런데, 내가 상점을 임의로 선택할 수 없거나, 내가 돈을 내지 않고 국가가 돈을 대신 내 주거나, 보험사와 계약해서 보험사가 대신 돈을 내더라도, 보험사를 임의로 선택할 수 없을 때, 이를 바로 공공 시장(Public market or public sector)이라고 한다.

즉, 의료 시장을 민간 의료 시장과 공공 의료 시장으로 나누는 기준은, 소비자가 시장경제 원칙을 따를 수 있느냐, 선택권이 있는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이 때, 민간의료 시장에 존재하는 서비스 공급자(service provider)를 Private medical provider라고 하고, 공공의료 시장에 존재하는 서비스 공급자를 Public medical provider라고 칭한다.

그런데, 거의 모든 나라 (우리나라를 제외한)는 이 두 시장이 공존하며, 국가와 의료제도에 따라 어느 나라는 민간의료시장이, 어느 나라는 공공의료시장이 더 비중이 클 뿐이고, 의료공급자(medical service provider)는 그 양쪽을 모두 공급하기도 하므로, 공급자를 기준으로 public과 private를 나누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자, 이 기준으로 보자면,

우리나라 의료소비자 즉 국민은, 국가가 운영하는 의료보험인 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고, 국내 어느 병원에 가더라도 이 건보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국민이 가는 모든 의료시장은 공공의료시장이고, 우리나라 모든 병원(소유 주체가 민간이건 공공이건 간에)은 공공의료를 제공하는 public provider인 것이다.

그러므로 진주의료원을 폐쇄한다고 공공의료를 말살하려고 한다는 말은 성립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여기까지 이해가 되었다면, 의료민영화의 의미를 알아보자.

우리가 사용하는 의료민영화란, “공공의료 시장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우리나라 의료시장에 민간의료 시장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즉, 자유 의지로 보험사를 선택하고, 의료기관 (상점)을 선택하고, 가격을 협상할 수 있는 그런 Private medical market을 공공의료시장 외에 별도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의료민영화이다.

그러니, <우리나라 의료기관은 다 민영화되어 있다>는 말은 똥개가 개천을 뒤지다가 할 일 없으니 풀이나 뜯어 먹는 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왜 이런 말이 나오느냐면,

민간의료와 공공의료의 기준을 의료기관 개설 주체의 관점에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누구 돈으로 가게를 열었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거기서 판매하는 재화의 가격이나 질이 중요할 뿐이다.

다만, 민간이 연 가게는 비교적 청소도 더 잘 되어 있고, 상품의 질도 좀 더 낫고, 서비스도 더 좋다는 편견이 있어, 주인이 민간인인지 국가에서 하는 건지 슬쩍 들여다 볼 수는 있다.

우리나라는, 의료기관 개설 주체가 국가나 정부기관이거나 아니면 민간이거나 개인이거나 관계없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내용은 같으며, 그 가격도 같다.

왜냐면 한 시장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단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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