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정심 구조가 문제가 아니라, 수가결정 구조가 문제이다.




건정심은 해마다 40조원에 가까운 돈을 어떻게 거두고, 어떻게 쓸 것이며, 어떤 항목을 보험으로 해주고, 어떤 것을 비급여 목록에 넣을 것인가 (비급여 항목에 없는 행위를 하고 돈을 받으면 임의비급여라고 하여 처벌한다.) 하는 건강보험에 관한 일체의 모든 사항을 정하는, 보건복지부 산하 40여개 위원회 중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가장 막강한 위원회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이 내는 보험료도 이 위원회가 정한다.

자,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도대체 수가가 어떻게 정해지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먼저 수가가 무엇인지 정리해 보자.
우선, 수가라는 건, 관용적 용어일 뿐, 법적 용어가 아니다. 법은 수가가 아니라, “요양급여비용”이라고 칭한다. 이를 다른 말로, “환산 지수”라고 하는데, 수가는 [환산 지수 X 상대가치 점수]로 정해진다.

즉, 수가 협상이라는 건, 환산 지수 인상율을 정하는 것이다.

‘상대가치 점수’는 요양급여 항목 즉, 보험이 커버되는 항목마다 정해지는 점수이다. 점수가 커지면, 당연히 수가는 비싸진다.

이 상대가치 점수의 총점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즉, 보험 혜택이 되는 행위의 총점은 정해져 있어, 어떤 행위의 점수를 올리려고 하면, 어딘가에서 점수를 깎아야 한다.

의료 행위의 난이도와 위험도는 의사들이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주로 대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이 점수 조정이 이루어진다. 그래서인지, 개원가보다 대학에서 주로 행해지는 행위의 점수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 측면이 있다.

아무튼, 요양급여비용(약칭 수가라고 하자) 계약은 법에 따라 공단 이사장과 공급자 단체의 대표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이를 수가 협상이라고 부른다.

해마다 수가 협상 철이 되면, 공단의 협상 팀과 의협, 병협, 치협, 한의협, 간협, 약사회 등의 협상 팀이 공단 주위에 모여 대기하고 있다가 공단 협상 팀이 부르는 대로 들어가 협상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 직전에 모종의 모임이 공단에서 열린다.

바로 <공단 재정운영위원회>이다.

이 재정위는 모두 30명으로 구성되며, 직장가입자 대표, 지역가입자 대표, 공익 대표 등등이 각각 10명 씩 참여한다.

공익으로는 관계 공무원 즉, 복지부 공무원도 포함이 된다.

문제는 이들 가입자 대표들은 바로 건정심 대표와 그대로 겹친다는 점이다.

재정운영위가 하는 역할은 보험재정에 관한 모든 상황을 심의 의결하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는데, 그 구체적 사항 중 하나는 바로, 수가 계약에 대한 사항이다.

법을 그대로 옮기면, “요양급여비용의 계약 (중략) 등 보험재정에 관련된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하여” 재정운영위를 둔다고 하고 있다.

또 법은 수가 협상은 공단 이사장과 공급자 대표가 하도록 하면서, “공단의 이사장은 제33조에 따른 재정운영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계약을 체결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수가 협상 전에 재정운영위가 열려, 다음 해에 올려 줄 수 있는 금액을 사전에 “심의 의결”한 후, 이를 공단에 지시하여 그 금액 한도 내에서 협상하도록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공단과 재정운영위는 미리 내년도 인상분을 확정함으로써, 사실상 총액계약을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수가 계약을 해도, 총액은 더 늘어나기도 했다.)

사실 수가 협상의 가장 바람직한 방식은 수가 인상 혹은 인하 요인을 따져 보고, 이를 수가 인상율에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이런 식으로 수가 협상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

왜냐면 재정위의 가이드 라인으로 공단 협상 팀이 쓸 수 있는 재정의 한계가 있어 이를 여러 단체에 나누어 줘야 함으로 실질적 수가 인상, 인하 요인 따위는 거들떠 볼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6개 공급자 단체 중 간협을 제외한 단체 중 가장 빠르게 수가협상을 끝내는 단체는 치협이며, 치협은 거의 협상에 성공한다. (간협이 수가 협상을 하는 이유는 조산사 수가 때문)

그 이유는 치협이나 한의협이 건보 재정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매우 작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많은 부분을 가져가는 단체는 병협이고, 그 다음이 개원의를 대표하여 협상하는 의협인데, 치협이나 한의협은 10%를 올려주어도, 병협, 의협의 1%가 안되기 때문에, 공단은 어느 쪽이라도 빨리 협상을 끝내기 위해, 늘 치협에 가장 높은 %를 제시하며, 가장 빨리 협상을 마무리 짓는다.
(한의협은 보험이 많아 예민한 반면, 치협은 보험보다 비보험이 훨씬 크기 때문에, 보험에 크게 연연해 하지 않는 눈치이고 오로지 가장 높은 수치를 받는 것에 치중한다.)

공단은 치협이나 한의협, 약사회와 비교적 높은 %로 협상 타결을 해줌으로써, 의협 병협을 초조하게 압박하는 동시에, 협상에 실패하여 건정심으로 갈 경우 공급자 단체들끼리 뭉치지 못하게 만드는 전략을 구사한다.

결국 다른 단체를 먼저 통 크게 떼어 주고 남은 것을 의병협에 갈라주는 형세이다.

이 때 가장 억울한 건 사실 의협이다.

왜냐면 수가 인상요인을 따져 볼 때, 건보 재정 지출을 차지하는 portion의 년도별 증감율을 고려하면, 병협 즉, 병원은 재정 소요 증가율이 해를 거듭할수록 크고, 반대로 의원은 해마다 떨어지기 때문에 인상요인만 놓고 보면, 사실 의원의 수가를 더 올려 주어야 균형을 맞출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협은 늘 높은 인상율을 주장하다가 협상에 실패하고, 이렇게 협상에 실패하게 되면, 그 즉시 재정위원회는 다시 소집하여 이번에는 수가협상 실패의 책임을 물어, 실패한 단체에게 페널티를 적용할 것을 의결한다.

이것이 무슨 해괴한 말인가 하면,
공단이 제시하는 수치로 수가 협상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건정심에서 공단이 제시한 최종 인상율에서 일정 수치를 감한 것 이상 수가 계약을 하지 못하도록 다짐한다는 것이다.

즉, 만일 의협이 5% 인상을 주장했고, 공단이 2.5% 인상을 주장하다가 결렬되었을 경우, 페널티로 0.7% 를 뺀 1.8% 이상을 주지 않기로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재정운영위의 위원이 곧 건정심 가입자, 공익 위원이기 때문이다.

공단과의 협상이 안되면, 법에 따라, 건정심이 수가를 정하도록 하고 있는데, 건정심에서 어떤 난상토론과 타협이 있다고 해도, 자신들이 스스로 정한 페널티 적용 수치 이상을 주지 않겠다는 이야기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실제 페널티가 적용된 사례가 적지 않고, 페널티 적용이 파기된 사례도 있다.

아무튼, 수가 협상이 결렬되면, 건정심이 소집되고, 건정심은 소위원회에서 더 논의하는 것을 의결한다.

이렇게 다시 소위가 열리고, 소위는 필요에 따라 소소위를 소집하여 협상을 재개하기도 한다.

이렇게 소위, 소소위가 열리는 이유는 건정심은 25명, 소위는 12명의 위원이 있는데, 이런 수의 위원들이 모여 수가협상과 같은 예민한 사항을 깊게 이야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위건, 소소위건 수가 협상을 논의를 하게 되면, 대개 가입자는 부대조건을 제시한다.

즉, 페널티를 받고 그냥 끝내던지 아니면, 페널티 보다 더 낮은 인상율을 받던지, 그게 싫으면 가입자가 제시하는 부대조건을 받고 그 보다 높은 인상율을 받으라는 것이다.

결국, 협상이란 그 부대조건을 받을 것인지, 그렇다면 그 부대조건의 강도와 수위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 부대조건이라는 것의 예는 이렇다. ‘약제비 절감 노력을 한다.’, ‘총액계약제 논의를 시작한다.’, ‘주치의제도 논의를 시작한다’ 등등 평소 가입자들이 주장하는 제도 논의를 해 보자는 것이 많다.

그러나 실은 가입자들 역시 그런 부대 조건을 건다고 해서, 논의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 눈치이다.

그럼에도 부대조건을 내거는 이유는, 객관적으로 보아 수가를 좀 올려 줄 필요는 있어 보이지만, 그냥은 주기 싫다는 생각일수도 있고, 스스로 의결한 페널티 의결을 파기할만한 명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올려주는 영 점 몇 %는 사실 돈으로 치면 몇 백억~ 몇 십억 수준인데, 년간 40조 원을 쓰는 마당에 그 정도 규모는 크다고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걸 그냥 줄 수도 없다는 것이다.

또 이런 측면도 있다.

건정심 위원은 가입자나 공급자나 짧게는 몇 년, 길게는 거의 10년 이상을 참여한 터줏대감들이 있다.

건정심 위원 경력이 가장 짧은 단체는 단연코 의협이다.

심지어, 수가에 그리 크게 연연하지 않는 치협은 물론, 한의협, 약사회 등도 적어도 5년 이상 건정심을 참여했거나 하고 있고, 가입자 위원들의 경력은 훨씬 더 길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일년에도 수 차례 만나고 싸우고 다투면서 서로를 알아가면서, 개인적 성향, 공격의 수준, 방어의 정도, 논리적 수준 등을 서로 빠삭하게 파악하기 때문에, 때로는 적당한 명분만 있으면 적당한 선에서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각자 단체를 대표해서 나오는 것이고,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소속 단체의 결정에 따라 그 결정을 관철하려는 것이지, 서로 원수 진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비록 입장 차이가 있을지언정, 상대가 보이는 태도, 사상, 신념에 대해 일종의 존경심마저도 생길 수 있다.

그런데, 불과 1, 2년, 아무리 길어야 3년을 넘기지 못하는 의협의 위원들은 그 같은 공감대도 없고, 경험도 없고, 전략도 없고, 전술 구사도 못하면서 어깨에 힘만 들어가 뻐대기만 하니, 누가 좋아할까.

이게 의협 건정심의 현실이다.

소위원회에서 어느 정도 결론이 나면, 그 의결 사항을 건정심 본회의에 제출하게 된다.

이미 공단과 합의된 수가 협상 결과도 마찬가지로 건정심에 제출된다.

그럼, 건정심에서는 이에 대한 각 위원들의 소감을 듣는 수준에서 수가협상 결과를 의결한다.

많은 이들이 건정심에서 주요 안건을 표결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쟁점 사항들은 미리 소위원회에서 논쟁을 통해 어느 정도 합의를 하기 때문에, 건정심에서는 의결을 할 뿐, 심의하거나 논쟁하는 일은 없다.

게다가 표결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만일 어느 단체가 의결 사항에 대해 끝까지 반대한다면, 그 사항을 기록으로 남길 뿐이다.

무슨 이야기냐면,
가입자 : 공급자 : 공익이 1:1:1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공급자에 불리할 것이라는 생각은 틀렸다는 것이다.

다시 언급하거니와, 건정심에서는 의결을 할 뿐, 심의하거나 논쟁하는 일은 없다.

심의하며 논쟁하고 다투는 건, 소위원회에서 벌어진다. 심지어 소위원회 역시 표결로 무언가를 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어느 쪽이든 주장이 우월해지거나 ‘대체로’ 합의될 때까지 거듭해서 회의를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건정심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수가 협상은 건정심의 구조가 문제가 아니라, 재정운영위가 수가 계약에 대한 사항을 심의 의결하도록 되고, 재정운영위의 위원이 건정심 가입자와 동일하게 되어 있는 법 33조, 45조가 문제인 것이다.

문제를 정확히 진단해야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다.

이번에 의정간 합의했다는 건정심 공익 위원 동수 추천은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이다.

설령 합의한다고 한들, 기존에 들어가야 할 꼭 필요한 공무원 2명, 보험자 2명과 연구기관 1,2 군데를 제외하면 최대 공익 2명을 공급자들이 합의해서 넣을 수 있다는 건데,

건정심 공급자가 8명이다. 건정심 공급자 8명이 오월동주 심정으로 서로 양보해서 공익 2명을 집어넣는다?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또 설령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게 과연 무슨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오히려 이런 의정 합의는 건정심 위원들을 자극하고 모욕하는 행위가 되어 버렸다.

또 이는 명백히 법으로 규정된 사항이라서, 법 개정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데, 법 개정은 정부도 '노력하겠다' 이상, 이하도 할 수 없다.

노력하겠다가 합의는 아니지 않은가?

노회장은 취임 초부터 건정심 구조 개편을 한다고 설레발 치고, 건정심 회의장을 박차고 나오게 하고, 파업 진행 중 건정심 구조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국회의원의 말 한 마디에 파업을 풀어버린 적이 있다.

누누히 이야기하지만, 건정심 구조 개편은 핵심이 아니다.

재정운영위원회의 부당한 간섭을 법에 합법화한 것이 문제이며, 재정운영위의 수가 협상 가이드 라인, 페널티 적용과 같은 행태들이 합리적 수가 결정의 문제인 것이다.

즉, 수가 결정 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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