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폐렴. 2월 28일 : "우한폐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와 중국의 권력 투쟁"







중국 정부와 중국 공산당의 최고 권력기구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는 7명의 상무위원으로 구성된다. 이중 태자당 출신이 2명, 공청단파 출신이 4명, 상하이방 출신이 1 명이다.





이 3 개의 파벌은 중국 공산당의 핵심 권력 세력이다.

태자당은 2대 국가 주석인 등소평의 아들(덩푸팡)을 비롯해 당과 군, 재계 실력자 등 상류 고위직 인사들의 자녀들이 모인 조직이다. 이들은 혼맥과 직장, 학교 등의 인맥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태자당 출신의 유명인사로는 전직 상무위원인 왕치산, 충칭시 당서기를 지낸 보시라이 등이 있고, 시진핑 역시 태자당 출신이다.

시진핑은 아버지 시중쉰이 8대 혁명원로 중 하나로 부총리를 지냈기에 시진핑도 태자당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시진핑은 보시라이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다가 2012년 보시라이가 권력 남용 등으로 몰락하면서 태자당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상하이방은 3대 국가주석인 장쩌민에 의해 만들어진 권력 파벌이다. 상하이 당서기였던 장쩌민은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2대 주석인 등소평으로부터 권좌를 넘겨 받아 국가 주석이 되었다.

장쩌민은 중앙 권력에 기반이 없어 상하이에서 자신을 보좌하던 부하들을 불러 요직에 앉혔고, 이들이 상하이방을 구성했는데, 이들 중에는 인재들이 많았다. 상하이방은 철저한 능력위주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등소평은 장쩌민의 후견인 노릇을 하며, 원로들과 경쟁자들을 제압하며 장쩌민을 밀어 주었다. 뿐만 아니라 다음 후계자 즉, 후진타오도 미리 낙점했다. 이 때문에 장쩌민과 후진타오 사이의 권력 갈등이 생긴다.

태자당과 상하이방은 인맥과 꽌시로 결집된 비선조직이라 할 수 있다. 반면 공청단파는 공식 조직이다.

공청단은 ‘중국공산주의청년단’을 말하며, 공청단파는 이 청년조직 출신들을 말한다. 대부분 평범하거나 가난한 지방 출신들이 많다.

이 조직은 1920년 설립된 중국공산당의 공식적 조직이며, 권력 파벌 중 가장 규모가 크다.

공청단에는 이공계들이 많았는데, 기술직이 취업이 용이하기 떄문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문화혁명 이후 해외 유학을 통해 견문을 넓힐 수 있었고, 개방 이후 산업화 바람을 타고 급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점차 공청단 출신의 고위인사들이 많아지면서 정치적 파벌이 되었다.

현재 공청단파의 수장은 4대 국가주석인 후진타오이며, 5대 주석 자리를 놓고 시진핑과 경쟁한 현 국무원 총리 리커창도 공청단파이다.

이 세 파벌이 이제까지 중국의 권력 구도를 그렸다고 하면, 시진핑 이후 신흥 권력 집단이 만들어졌다.

장쩌민이 상하이방을 구성했듯, 시진핑에게도 가신그룹이 있다.

시진핑은 푸젠성, 저장성, 상하이에서 일하며 지도자로 성장했는데, 푸젠성 인맥은 민강구부, 저장성 인맥은 지강신군, 상하이 인맥은 포강구부라고 불린다. 시진핑은 이 인맥과 출신학교인 청화대 출신들로 구성된 이른바 시자쥔(習家軍) 혹은 ‘시파이(習派)’ 라고 불리는 친위조직을 만들었다.

시자쥔은 지금 중앙과 지방의 요직을 점령하고 있다. 2017년 중국 5대 자치구인 베이징, 상하이, 톈진, 충칭시, 광둥성의 당서기는 모두 시자쥔 출신이 거머쥐었다.

상무위원 중 공청단 출신이 4명으로 가장 많아 보이지만, 리잔수와 자오러지는 사실상 시자쥔이다.

중국은 파벌보다 인맥 즉, 꽌시가 중요하기 때문에 공청단 출신이라고 해도 시진핑과의 꽌시로 시자쥔이라 할 수 있다.

리잔수는 시진핑과는 30대 시절부터 가깝게 지냈던 인물이며, 시진핑의 복심으로 불린다.

자오러지는 그 조부와 부친이 모두 시 주석의 부친과 가깝게 지낸 깊은 꽌시를 가지고 있다. 자오러지는 시진핑의 칼이라 불리며 부패 척결에 앞장 섰다.

왕양 역시 공청단 출신이고, 시자쥔은 아니지만, 시진핑의 경제 사령탑 역할을 하고 있다.

모택동 이후 중국 공산당에는 시진핑까지 모두 5명의 지도자가 있었다.





모택동은 역대 중국 지도자 중 가장 강력한 권력을 누리며 영구 집권했다. 진시황도 그의 권력에는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독재권력을 누리며 문화대혁명과 대약진운동을 벌여 수천만명의 중국인을 죽이는 커다란 과오를 남기기도 했다.

모택동의 권력을 넘게받은 등소평은 같은 과오에서 벗어겠다는 의지로 집권 지도체제를 선택하면서도, 장쩌민은 물론 후진타오까지 지명해 후계구도를 만들어 놓았다.

장쩌민과 후진타오 즉, 상하이방과 공청단은 극심하게 대립하며 권력투쟁을 벌였다. 짱쩌민이 후진타오를 꼭두각시 세우고 막후에서 권력을 휘두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스 사태를 빌미로 후진타오는 장쩌민으로부터 주석 자리를 넘겨받을 수 있었다.

후진타오의 후계자를 놓고도 다툼이 있었다. 장쩌민은 상하이방 출신을, 후진타오는 공청단 출신을 후계자로 지목하려고 했지만 태자당의 시진핑이 낙점되었다. 이 과정에서 태자당은 공청단과 손을 잡고 상하이방, 즉 등소평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결국 상하이방(장쩌민)은 공청단(후진타오)을, 공천단은 태자당(시진핑)을 지명하게 사이좋게(?) 돌아가며 권력을 잡은 꼴이 되었다.

그러나 시진핑은 보다 큰 야심이 있었다.

시진핑은 시자쥔이라는 독자 파벌을 만들어 3각 권력 구조를 흔들었을 뿐 아니라, 2018년 국가주석직 3연임 제한 규정을 폐지해 종신 집권의 기틀을 세우며 중국 권력 구조를 송두리체 흔든 것이다.

이후 칼을 휘두르며 상하이방은 물론 공청단 출신들을 제거하고 꽌시를 이용해 치부하던 태자당에게도 칼을 겨눴다.

총리인 리커창도 사실상 무력화되었으나 우한폐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나자 리커창을 앞장 세워 대응하게 하고 있다. 결국 책임을 리커창에서 떠넘긴 셈이다.

이런 가운데, 종신 집권, 경제 위기와 경기 하락, 미국의 무역 압력, 지나친 우상화와 무차별적인 정적 제거,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등으로 시진핑에 대한 비난과 분노가 임계점을 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우한폐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여전히 권력의 끈을 놓치 않으려는 상하이방의 음모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장쩌민을 대신해 상하이방을 이끄는 장남 장몐헝이 바이러스를 유출해 전염병 사태를 만들어 시진핑의 권력을 흔들어 낙마시키려고 했다는 것이다.

장몐헝은 중국과학원 부원장으로 재임했으며, 중국과학원과 상하이 병원, 대학 등을 묶어 이득을 취해 왔으며, 그의 측근으로는 중국과학원 원사 수홍빙이 있는데, 수홍빙의 아내 왕옌이가 바로 우한 바이러스연구소의 소장이다.



수홍빙



왕옌이




왕옌이는 원래 첼로를 전공했을 뿐인데 베이징대 생명과학원에 입학한 후 남편인 수홍빙 아래에서 석박사를 하고 우한 연구소에 들어가 소장이 되었다. 왕옌이는 현재 39세에 불과하며, 베이징 생명과학연구소 라오이 박사는 '그녀는 자격이 전혀 없다'며 사직을 공개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터넷에 떠도는 이같은 루머는 사실 역공작일수도 있다.

시진핑은 바이러스 사태에 인민들의 분노를 쏟아내게 할 대상이 필요하고, 이를 상하이방에 뒤집어 씌우기 위해 장몐헝과 왕옌이, 수홍빈의 연관설을 퍼트리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러 루머와 음모론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있다.

첫째, 시진핑의 권력에 금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외부에서는 잘 알 수 없으며, 중국 권력 내에서는 매우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이 권력 투쟁과 우한폐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모종의 연결 고리가 있다는 것이다. 즉, 바이러스 사태가 권력 투쟁의 결과물일 수 있거나, 바이러스 사태로 권력 투쟁이 극한을 달릴 것이라는 것이다.
넷째, 우리는 이제 심심치않게 태자당, 상하이방이니 공청단이란 용어를 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2020년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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