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폐렴. 2월 28일 : "의협의 정체성"



의협은 의료법에 따라 만들어진 법정 단체이며, 사단법인의 형태를 취하고 있고 그 구성원(사원)은 전국의 의사이며, 전국 10만 의사는 의무적으로 의협에 가입해 의협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의협의 조직 안에는 의학회도 있으며, 의학회 역시 사단법인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의학회의 구성원은 사람이 아니라 학회이다.


법정 단체의 의미는 정부가 의료 관련 법이나 의료 정책을 만들 때 공식적인 파트너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며, 실제 법과 정책 수립의 의견을 구하고 있고, 이를 의견 조회라고 한다.

또, 면허, 의료 업무, 광고 심의 등 의협은 정부를 대신해 관련 업무 추진하거나 정부 정책을 회원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하며, 해마다 정부의 감사를 받기도 한다.

이렇게 의협은 법정 단체의 정체성을 갖는 한편, 의협은 이익 단체라고 할 수도 있다.

의협은 회원들의 권익을 옹호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 지역별 의사회, 각종 과별 의사회를 하부 조직으로 둔다. 즉, 종횡의 조직 구성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의협은 치협이나 간협, 한의협과 달리 전문 과목이 많고 절대적 수도 많다.

즉, 의사는 과별, 지역별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고, 다 잘났고 고집도 세지만, 의협은 이를 조정 수렴 해야 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의협의 조정 기능, 의견 수렴 기능이 사라졌다.

그러다보니 이해관계 조절이 안 될뿐 아니라, 정부가 입법, 정책 등에 대한 의견을 조회할 때 통일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한다.

의협 지도부가 무능할수록 이런 일이 더 심각했다.

결국 의협 지도부는 전체 의견을 수렴하기보다는 회장단이나 몇몇 인사들의 의견을 마치 전체 의견인양 제시하고 그게 드러나면 회원들의 반발을 받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예를 들어, 정부와의 회의 즉, 민관합동 위원회에서 의료계 측 의견을 전달하고 돌아와 이를 공표한 후 회원들의 거센 반발에 못 이겨, 그 의견을 번복하는 일이 수없이 발생했고, 이런 일이 반복되자 의협을 대표해 회의에 참석한 인사는 아예 정부 정책에 무조건 반대하거나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일도 생겼다.

그러다보니, 정부 입장에서 의협은 '신뢰할 수 없는 단체'가 되어 버렸고 더 이상 부르지 않는다. 최근 이런 경향이 더 심하다.

또, 대개 이런 위원회에 주로 참석하는 이들은 그 '업계'에서 매우 익숙하고 경험이 많으며, 인맥도 넓다. 비숫한 입장의 치협이나 한의협 등은 때문에 임원을 정해 10년 혹은 20년 일을 맡긴다. 결국 그는 '선수'가 되고, 다른 선수와 동등한 입장에서 링에 오른다.

의협은 아니다. 거의 3년마다 회장이 바뀌고 그 때마다 임원이 바뀐다. 평생 환자나 보던 개업의나 교수가 임원이 된다.

이 순진한 사람들이 선수들과 싸워 제 역할을 하는 건 쉽지 않다.

이렇게 얘기하면 자기 시간과 열정을 희생하며 일하는 의협 임원들은 반발하겠지만, 그게 사실이다.

지금 의협이 배제되거나, 수도 없이 기자 회견을 하지만 묵살되는 건 단지 정부가 의협을 무시하거나 불신하기 때문이 아니다. 게다가 의협 회장이 극우 성향을 갖기 때문도 아니다.

이 지점에서 물어야 할 게 있다.

의협은 정부보다 앞서, 감염학회, 예방의학회 등 관련 단체, 소위 관련 전문가나 학자들을 소집해 충분히 회의를 거쳐 우한폐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의협의 공식적 입장을 정했나?

지난 여러차례의 기자 회견이 그런 과정을 거쳐 입장을 밝힌 것인가?

그런 노력을 충분히 하여 하나의 의료계 의견을 만들고, 그걸 공식적 문서로 정부에 전달했는가?

의협은 이에 답해야 한다. 의협은 쟁점 사안에 대해 주도적으로 하나의 의료계 입장을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런 과정을 거쳐 공식적 입장을 전달했다면 왜 정부가 그걸 무시하는지 성찰해야 한다.

의협이 주장하듯, 몇몇 소위 전문가가 상황을 오판해 사태가 악화된 건 부인하기 어렵다.

그들의 판단 착오가 질병 확산 방지에 커다란 문제를 야기해 결국 국민들이 피해를 봤다면 이건 의학자의 양심과 도리를 버리는 것이며, 스스로 자중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 문제는 추후 의협에서 공개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또, 앞서 이야기했듯 의협은 이익 단체이다.

회원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회장과 임원들은 장차관은 물론 사무관이나 하급 공무원에게도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을 자세가 되어야 한다.

우한폐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일선 의사들은 마스크 등 의료 자원 부족으로 아우성이다. 의협의 대안은 무엇인가? 주지하다시피 마스크의 절반은 정부로 들어간다. 읍소해서라도 받아와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여전히 각자도생인가?

상대는 정부이고, 의협은 단체이다. 단체가 정부를 이길 수는 없다.

'대한민국이 의사없이 돌아갈 수 있느냐? 의사 협조없이 신종 전염병을 막을 수 있느냐?'

추호라도 이런 생각은 하지 말길 바란다.

의협이 홍콩 의료계처럼 '국경을 폐쇄하지 않으면 폐업하겠다'며 일사분란하게 회원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때문이다.

정부를 비난하는 건 쉽다.

실제 정부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의 잘못은 의협이 아니라 국민이 심판한다.

의협은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2020년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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