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폐렴: 2월 10일. "모르면 모른다고 해도 된다. 그게 사실이므로"
미국 질병관리 본부는 우한폐렴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사이트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이중 "How 2019-nCoV Spreads (2019-nCoV 확산 방법)" 이란 페이지가 있다.
https://www.cdc.gov/coronavir…/2019-ncov/…/transmission.html
이 페이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 2019-nCoV (우한폐렴 바이러스를 의미)가 어떻게 퍼지는지 많은 것이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의 지식은 메르스나 사스 같은 기존의 코로나바이러스를 통해 알려진 내용을 기반으로 알고 있는 것 뿐이다."
내 기억에, 메르스 사태가 확산될 때, CDC의 태도는 이렇지 않았다. 당시 CDC는 사우디에서 나온 정보를 기반으로 그것이 절대적 사실인양 알려주었을 뿐, '잘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른다'고 하는 바뀐 태도로 국민들이나 언론, 의료인에게 좀 더 확실한 분별력을 갖게 할 수 있다.
그 분별력은 '정부 기관도 잘 모르는구나. 왜 제 역할을 못하는거냐!' 라는 비난이 아니라, '정부 기관도 잘 모르는구나. 그렇다면 제대로 알때까지 더 조심하고 주의를 해야겠다' 는 것이다.
우리 CDC 즉 질병관리본부의 태도는 다르다.
매사에 '그럴 리 없다', '그럴 수 없다' 혹은 '그럴 가능성은 없다' 이다.
메르스의 예를 들면, 무증상 감염, 공기 감염, 2차 감염, 지역 사회 감염 등에 대해 이런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그럴 리 없다던 공기감염이나 2차 감염은 발생했다.
정부가 '그럴 수 없다'고 하니, 국민들이나 언론, 의료인들 역시 그 가능성을 의심하기 보다는 배제하며 일을 키웠다.
여담이지만, 메르스 사태 당시 우리나라 당국은 WHO와 미국 CDC의 정보를 기반으로 메르스에 대한 지침을 정하면서 심지어 번역(!)에 실패하여 방역망이 뚫린 적도 있다.
메르스 대응 지침을 만들면서 밀접 접촉자 분류 기준을 정할때, 밀접 접촉자를 "환자와 신체적 접촉을 한 사람 또는 환자가 증상이 있는 동안 2미터 이내의 공간에서 (and) 1 시간 이상 머문 사람"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미 CDC의 기준은 "감염자와 2미터(6 피트) 이내 같은 공간에 머문 경우 혹은 (or) 보호장비 없이 감염자와 오랜 시간 같은 공간에 머문 경우"였다.
즉, 미국 정부의 기준으로는, 2미터 이내의 접근해 있었거나 (or) 오랜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다면 밀접 접촉자로서 확진 검사를 시행해야 했으나, 우리 정부의 기준은 2미터 이내 공간에서 (and) 1 시간 이상 머문 사람으로 밀접 접촉자를 규정하면서 감염의 우려가 있는 사람에 대한 확진 검사의 폭을 크게 제한 해버린 것이다. 'or' 를 'and' 로 해석해 버린 것이다.
그 덕에 방역망에 구멍이 뚫려버렸다.
같은 사태는 이번에도 발생했다.
의사 단체와 많은 의료인들이 선별진료 기준이 지나치게 좁다고 지적하며, 더 폭 넓게 봐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선별진료 대상자를 후베이성과 우한 시민으로 제한하면서, 다른 나라나 중국 다른 지역에서 입국한 감염자를 놓치게 되었다.
물론 질본은 적은 인력에 잘 모르는 신종 전염병을 맞아 곤혹을 치뤘고, 지금도 그럴 것이다. 그런 질병관리본부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좀 잘 해 보자는 거다.
미 'CDC의 2019-nCoV 확산 방법' 페이지는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There is much more to learn about the transmissibility, severity, and other features associated with 2019-nCoV and investigations are ongoing.'
"2019-nCoV의 전염력, 중증도와 기타 특징은 알아야 할 것이 더 많으며, 조사가 진행 중이다."
우리도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말해야 한다.
그런다고 실망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그게 사실이니까.
그래야 오히려 더 조심하고, 불편하고 쓸데없는 루머를 줄일 수 있다.
2020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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