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폐렴. 2월 19일 : "과거로의 회귀?"







80년대, PK 때인가, 인턴 때인가 어느 내과의로부터 "내과 중에서 질병을 정복한 유일한 분야는 감염병" 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질병을 완벽히 정복했다는 건 오만한 얘기지만, 항생제의 발달로 상당한 성과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80년대는 새로운 항생제들이 쏟아져 나온 항생제의 황금기였고, 의사들은 다양한 선택지를 골라 쓸 수 있었으며, 꽤나 잘 들었기에 '질병을 정복한 분야' 라는 말을 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현대적 개념의 첫 항생제는 1940년대 시판된 페니실린 G이다. 알다시피 페니실린은 알렉산더 플레밍의 실수로 발견된 곰팡이에서 유래된 것이다.

인류는 그 덕에 세균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듯 했다. 페니실린 사용 이전에는 포도상구균에 의한 패혈증 사망율이 80%가 넘었다.

이렇게 보면, 인류는 좀 더 진화된 곰팡이로부터 세균을 죽이는 법을 배웠고, 좀 더 진화된 세균으로부터 바이러스를 죽이는 방법 (엄밀하게는 크리스퍼라는 유전자 가위 기술) 을 배운 셈이다.

세균벽을 파괴해 작용하는 페니실린 이후 다양한 기전을 갖는 항생제들이 차근차근 개발되었는데, 인류가 항생제를 개발할수록 세균들은 저항력을 갖게 된다는 문제가 생겼다.

페니실린의 경우, 사용되기 시작한 10년 뒤에는 포도상구균의 40%가, 20년 뒤에는 80%가 내성을 갖게 되었다. 이 때문에 새로운 항생제인 메티실린을 개발했지만 불과 2년만에 내성균이 출현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한때 최후의 항생제라고 불렸던 반코마이신에 대한 내성균도 나타났을 뿐 아니라, 각종 다제내성균이 속속 밝혀지고 있고, 감염 사례는 급증하고 있다.

박쥐가 코로나바이러스의 저수지라면 국내 요양원 요양병원은 다제내성균의 저수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정부도 어쩌지 못해 사실상 손 놓고 있다.

세균이 저항력을 가지며 진화하면 인류도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해야 하지만, 최근 20년 가까이 새로운 항생제 개발은 사실상 전무한 편이다.

다제내성균 치료를 위한 항생제는 임상 시험 문제로 개발이 어렵고 오래 걸리며, 투자비는 큰데 비해, 일부 환자에서만 단기간만 사용돼 이른바 '시장성'이 없기 때문이다.

다제내성균 뿐 아니라 동물에서 유래하는 각종 바이러스들도 종의 벽을 넘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HIV, 한타바이러스, 지카바이러스, 조류독감 바이러스, 사스, 메르스 등은 물론 지금 유행하고 있는 우한폐렴 코로나바이러스 등등은 모두 과거에는 인류에게 문제가 없었던 신종 감염병이다.

지금도 문제지만 앞으로 또 어떤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해 인류를 위협할지 알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감염 의학은 질병을 정복한 분야가 아니라 발전 가능성이 무궁한 학문이 되었고, 반면 인류는 항생제가 없던 1940년 전으로 다시 퇴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20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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